어째서 古事成語 일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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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鳴驚人
一鳴驚人 -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한번 시작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의 대업을 이룩하는 것 (순우곤)(사기 골계열전) 荊莊王立三年,不聽而好讔。成公賈入諫。 王曰:不穀禁諫者,今子諫,何故? 對曰:臣非敢諫也,願與君王讔也。 王曰:胡不設不穀矣。 對曰:有鳥止於南方之阜,三年不動不飛不鳴,是何鳥也? 王射之曰:有鳥止於南方之阜,其三年不動,將以定志意也;其不飛,將以長羽翼也;其不鳴,將以覽民則也。是鳥雖無飛,飛將沖天;雖無鳴,鳴將駭人。賈出矣,不穀知之矣。 明日朝,所進者五人,所退者十人。群臣大說,荊國之眾相賀也。(呂氏春秋) 초장왕 3년 곁말만 좋아하고 듣지를 않았다. 성공가(成公賈)가 궁에 들어가 간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간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그대가 지금 간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답하였다. 남쪽 흙산에 머물고 있는 새..
2023.05.09 -
口禍之門
kouhuozhimen 口禍之門 - 입은 재앙의 문이다 재앙이 입으로부터 나오고 입으로부터 들어가므로 항상 말을 조심하라 《全唐書)》〈舌詩〉편 馮道의 글에서 유래되었다 馮道는 唐나라 말기에 태어났으나 당나라가 망한 뒤의 後唐 때에 재상을 지냈다. 후당 이래 후後晉, 後漢, 後周 등 여러 왕조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그 동란의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處身에 많은 經綸을 쌓은 사람으로 위와 같은 處世觀을 남겼다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2023.05.03 -
䑛糠及米
䑛糠及米 - 겨를 햝다가 쌀까지 먹어 치우다 외부의 적이 마침내 내부마저 장악하게 되는것 (인간의욕심은 끝이 없다) 史記의 열전 중에 吳王濞列傳에 나온다. 漢을 세운 高祖 劉邦은 가문의 자제들에게 땅을 분할하여 제후국을 만들었는데 장조카 비에게는 오왕을 제수했다. 그러나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중앙의 명령에 불복하는 제후들이 늘어났다. 景帝때에 이르러 지혜 주머니 智囊으로 불리던 鼂錯(조착)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후국의 영지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의 지지를 받은 강직한 조착의 개혁이 먹혀 들어가자 여러 곳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소금과 구리가 많이 생산되어 부강한 오왕 비는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차라리 모반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세력을 규합했다. 이웃 나라에 사신을 보내 설득했다. ‘지..
2023.04.25 -
不足回旋
不足回旋 - 돌기에 부족하다 처지가 어려워 몸을 돌리기조차 어렵거나 자기역량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後漢 班固(32∼92)가 저술한 《漢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成語이다. 前漢의 景帝(재위 BC 157∼BC 141) 때 황제의 일족은 여러 곳에 영토를 가지고 왕국을 형성하였다. 景帝는 각 지방에 땅을 주어 다스리게 한 왕들을 모두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는데 모든 왕들이 춤추며 흥겹게 놀았다. 오직 長沙의 定王 혼자만 춤을 출줄 모르는 것처럼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景帝가 定王에게 왜 춤추면서 놀지 않는지를 묻자, 定王은 "나라가 작고 땅이 좁아 몸을 돌리기가 어렵습니다[國小地窄 不足回旋]"라고 대답하였다. 定王의 말을 듣자마자 景帝는 곧 武陵, 零陵 지방 등을 정왕에게 임시로 주어 다..
2023.04.18 -
烏合之卒
wuhezhizu 烏合之卒 무리 지어 있는 까마귀 무질서한 군중 또는 훈련도 받지 못한 병졸 漢나라 말기에 황실 외척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던 大司馬 王莽은 平帝를 시해하고 아직 어린 嬰을 새 황제로 옹립하여 국권을 한손에 틀어쥐었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 삼 년 후에는 어린 황제마저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新이라 일컬었다. 그처럼 혁명에는 성공했으나 정치는 형편 없어서 전국에 도둑이 들끓고 백성들의 삶은 몹시 어려워 그 원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때 황실 종친인 劉秀가 군병을 일으켜 왕망을 토멸한 다음 6대 景帝의 후손인 劉玄을 새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 劉秀가 나중에 後漢의 시조가 되는 光武帝다. 어쨌든 그로써 혼란이 그럭저럭 수습되는 듯했으나, 王郞이란 자가 “나는 成帝의 아들..
2023.04.11 -
移木之信
移木之信 - 나무를 옮기는 믿음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史記》의 〈商君列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秦의 孝公에게는 商鞅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商鞅은 衛나라의 公族출신이었으며, 법률에 밝았다. 商鞅이 한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商鞅은 백성들의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商鞅은 3장(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十金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商鞅은 다시 오십 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商鞅은 즉시 오십 금을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뒤 商鞅은 새로운 법을 공포하였다. 새..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