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衣巷

2022. 12. 4. 14:16漢詩를 맛보다

烏衣巷 劉禹錫

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주작교 언저리에 온갖 들꽃 피었는데

오의항 어귀에 석양이 비꼈구나
그 옛날 왕도와 사안의 집에 드나들던 제비들

이제는 백성들 집에 예사로이 날아드네

 

烏衣巷 : 검은 옷을 입는 동네. 江蘇省江寧縣(강소성 강녕현) 남쪽에 있는데, (진) 나라 때 王導(왕도)와 謝安(사안) 등 귀족들이 살면서 자손들에게 늘 검은 옷을 입혔기 때문에 생긴 이름임. 烏衣巷이란 말에는 ‘燕子國(연자국, 제비 나라)’이란 뜻도 있음.

오의항은 말하자면 理想鄕(이상향)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白居易(백거이, 白樂天백낙천)가 읊은 ‘朱陳村(주진촌)’도 이와 비슷하니, 주진촌은 강소성 徐州(서주)에 있으며 주씨와 진씨의 두 성씨만이 살면서 세상과는 통하지 않고 대대로 서로 혼인하며 살아가는데, 武陵桃源(무릉도원)처럼 깊숙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것이다

劉禹錫는 자 몽득(夢得). 허베이성[河北省]출신. 일설에는 장쑤성[江蘇省] 출신이라고도 한다.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두우(杜佑)의 막료가 되었다.

얼마 후 중앙의 감찰어사로 영전되어 왕숙문(王叔文)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정치 개혁을 기도하였으나

805년 왕숙문은 실각되고, 우석은 낭주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었다.

10년 후 다시 중앙으로 소환되었으나 그 때 지은 시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 다시 연주자사(連州刺使)로 전직되고 그 후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최후로 생애를 마쳤다.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를 펴냈으며, 만년에는 백낙천(白樂天)과 교유하면서 시문(詩文)의 도에 정진하였다. 시문집으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30권) 《외집(外集)》(10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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