豊樂亭春遊

2022. 4. 25. 19:38漢詩를 맛보다

豊樂亭春遊 歐陽修

綠樹交加山鳥啼

晴風簜漾落花飛

鳥歌花舞泰守醉

明月醉醒春己歸

푸른 나무 엇갈려 있고 산새들 지저귀는데

상쾌한 바람 산들 부니 떨어지는 꽃잎 나부끼네

 새는 노래하고 꽃은 춤추며 태수는 술 취해 버렸는데

내일 깨고 나면 봄은 이미 흘러가 버렸겠지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중국 송나라 때 시와 글씨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면양(綿陽)이 그가 태어난 고향이지만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대부분은 호북성(湖北省) 수주(隨州)에서 보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문구(文具)를 살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서 가르쳤다고 한다. 10세 때 당나라 한유(韓愈)의 전집을 읽은 것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되었으며 후일 그의 영향으로 시문혁신론(詩文革新論)을 주장하였다

한림원학사() ·참지정사() 등의 관직을 거쳐 태자소사()가 되었다.

인종()과 영종() 때 범중엄()과 한기()를 중심으로 한 새 관료파에 속하여 부정부패와 무능한 관료사회를 일신하는데 활약하였다.

특히 붕당론()을 주장하여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모이며, 소인배는 소인배와 더불어 모이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같다고 역설했다. 1058년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지예부공거()로 임명되어 자신의 소신이었던 시문혁신론을 바탕으로 과거의 유형을 개편하였다. 이때 과거에 지원한 증공()과 소식(=소동파 )과 소철()이 합격하였다. 

그에 앞서 소식의 부친인 소순()을 천거하여 등용한 일화는 유명하며 이들은 모두 구양수의 제자로 당송팔대가()에 속하는 인물로 평가되었다. 

1067년 신종() 때 동향후배인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신법은 왕권의 강화와 부국강병을 위한 것으로 백성들에게는 더욱 힘겨운 정책이었다.

 

이 시는 구양수가 저주태수로 있을 때 풍락정에서 봄나들이를 하면서 지은 연작시 3수 중 제 1수입니다.

1, 2구에서는 봄이 온 정경을 푸른 나무, 지저귀는 산새, 상쾌한 바람, 나부끼는 꽃잎이라는 경물을 통해 세밀하고 운치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구에서는 자신이 봄 경치에 취하고 술에 취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4구에서는 내일이면 지나가 버리고 없을 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떠나가 버릴 봄의 운명은 제 2구의 飛자에 이미 예견되어 있으며, 봄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은 봄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봄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홀연 가버리는 세월의 허망함 속에서 시인은 술에서 깨어나면 봄도 가버리고 청춘도 가고 없는 일장춘몽의 인생사를 푸념하듯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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