滁州西澗
2022. 4. 18. 11:39ㆍ漢詩를 맛보다
滁州西澗 ㅡ 韋應物
獨憐幽草澗邊生
上有黃鸝(려)深樹鳴
春潮帶雨晩來急
野渡無人舟自橫.
저주의 서쪽 시냇가에서
그윽한 풀 개울가에 자라남을 유독 좋아하는데
위쪽에는 꾀꼬리가 나무 깊숙이 울고 있구나
저녁무렵 봄비에 물 불어 급히 흐르고
들판 나루터엔 인적 없이 배만 가로놓여 있구나
위응물(韋應物:797-804) : 산시성[陝西省] 장안[長安] 출생. 젊어서 임협(任俠)을 좋아하여 현종(玄宗)의 경호책임자가 되어 총애를 받았다. 현종 사후에는 학문에 정진하여 관계에 진출, 좌사낭중(左司郞中) ·소주자사[蘇州刺史]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시에는 전원산림(田園山林)의 고요한 정취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으며, 당나라의 자연파시인의 대표자로서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었다
제목은 '저주(滁州)의 서간(西澗)'이라는 뜻이다. 저주(滁州)는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추현[滁縣]에 해당되며, 서간은 당시 저주성 서쪽 교외에 있던 개울의 명칭이다.
위응물이 당나라 덕종(德宗) 때인 781년 저주의 자사(刺史)로 임명되어 재직할 때 지은 시이다.
이 작품은 봄 들판의 경관을 빼어나게 묘사하여 위응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특히 3 ~ 4구가 명구(名句)로 회자된다.
한편, 이 시는 단순하게 산수경물을 읊은 것이 아니라, 개울가 풀은 지은이 자신, 꾀꼬리는 아첨하여 요직을 차지하는 무리를 상징하며, 물살이 급해지는데도 사람을 태워 물을 건너야 할 배가 나루터에 그냥 걸쳐 있는 광경은 한직(閑職)에 임명되어 뜻을 펼치지 못하는 지은이의 불우한 처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