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2022. 4. 6. 13:25나는 王이로다

李晑()

재위 1450.2.23. - 1452.5.14.(2)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적으로 치르는 바람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가 잠시 섭정을 맡았다. 그러다가 결국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7세를 일기로 경복궁 천추전에서 승하하였다

재세 1414.10.3.- 1452.5.14.(38, 왕세자30(대리청정8))

부인- 10, - 3

-현덕왕후 권씨-11(단종,경혜공주)- 단종을 낳고 하루만에 산후병으로 사망

-폐빈 김씨(질투), 폐빈 봉씨(동성애(소쌍)), 숙빈 홍씨, 숙빈 문씨, 소용 권씨, 소용 정씨, 소훈 윤씨, 승휘 유씨, 사칙 양씨-1

-현릉(동원이강릉,동구릉))

 

실록에 따르면 이날 세종은 이조판서 허조에게 이리 명했다.

'세자빈을 간택하기 위해 열세 살 이하 처녀들 혼인을 금지했는데, 부모가 늙고 병들어 속히 혼인을 이루려는 자가 있을 것이니 합당한 자 두세 명을 간택하고 나머지는 혼인을 허용하도록 하라.' 혼기가 찬 왕세자 문종 부인을 고르기 위해 내렸던 금혼령을 풀겠다는 말이다. 최고 규수를 다른 집안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조치였다.

그런데 뭐가 꼬였는지 결혼 금지령은 넉 달 뒤인 5월 1일에야 풀리고, 2년 뒤에야 장남 문종 혼례식이 거행됐다.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간택된 안동 김씨 규수가 휘빈 김씨다.

아비를 쏙 닮아 학문에 열중한 세자였다.

세종이 만들어준 경복궁 동궁 집무실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남편이었다. 왕이 될 남편이었다.

학업에 열중하는 열세 살짜리 남편을 사무실에 두고, 휘빈 김씨는 속을 앓았다.

공부만 할 줄 알았던 남편이 덕금이, 효동이 같은 궁녀들과 놀아난다는 말도 돌았다하여 휘빈 김씨는 호초(胡椒)라는 시녀에게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술법'을 물었다. 술법은 이러했다. 궁녀들 신발을 태워 그 재를 술에 타서 남편에게 먹이기. 교미 중인 수컷 뱀 정액을 천에 묻혀서 다니기. 그러면 남편이 돌아온다고 했다.

며느리를 심문했던 세종이 이리 말하였다. "뜻밖에도 (며느리) 김씨가 미혹(媚惑)시키는 방법으로써 압승술(壓勝術)을 쓴 단서가 발각되었다."

세종 11년, 1429년 7월 18일 일이다. 세종은 호초를 옥에 가두고 며느리를 쫓아냈다.

이틀 뒤 세종은 종묘에 이 같은 사실을 고하고 휘빈 김씨 아버지 김오문과 큰아버지 김중엄을 파면했다.

호초의 아버지 이반도 파면했다. 호초는 목을 베 죽였다. 그날 전국에 다시 금혼령이 떨어졌다.(1429년 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석 달 만에 새로운 며느리가 간택됐다. 이번에는 순빈 봉씨다.왕실의 평화, 딱 7년 갔다.

1436년 10월 26일 세종이 이리 말한다. "괴이한 일이 있는데 이를 말하는 것조차도 수치스럽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한다. "부모일지라도 침실(寢室) 일까지 어찌 자식에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세자와 세자빈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 고심 끝에 세종이 후궁 셋을 들였다.

후궁 승휘 권씨가 임신을 하자 사달이 났다. 봉씨가 자기도 임신을 했다고 소동을 피웠다.

궁궐 물건을 친정으로 빼돌리다가 발각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행동을 했다. '시녀들 변소에 가서 벽 틈으로 외간 사람을 엿보고' '시녀들과 잠자리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이 놀라서 소헌왕후와 함께 소쌍(召雙)이라는 시녀를 불러 캐물었다.

소쌍이 답했다. "빈께서 윽박지르므로 마지못해 옷을 반쯤 벗고 병풍 속에 들어갔더니,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들어와 눕게 하여 남자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하였습니다."(1436년 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세종은 그날로 며느리를 쫓아내고 이리 명했다. "추잡한 일은 빼고 다른 일만 적어서 세상에 알리라."

경혜공주를 낳은 승휘 권씨가 세자빈으로 승격됐다.

권씨는 단종을 낳고 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 죽었다.

문종은 새로운 왕비를 맞지 않았다. 왕비 없이 권좌에 있던 유일한 왕이다.

물론 후궁은 여럿 있었지만. 며느리에 관해 골치 아픈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순빈 봉씨를 내쫓기 3년 전, 세종이 정승들에게 타는 속을 털어놓았다. 넷째 며느리 남씨에 관해서다.

"며느리가 열두 살이 넘었는데 아직 오줌을 싸고 눈빛이 바르지 못한 데다 혀가 심히 짧고 행동이 미친 듯하다."(1433년 세종실록 15년 6월 14일) 하도 이상하여 세종이 탐문한 바, 남씨는 어릴 때 미친 병이 생겨 치료를 받았고, 운수가 좋아서 대군의 배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오히려 믿지 못하여 날마다 두고 보았더니, 행동이 방자하여 떳떳함이 없으므로 좌우에서 웃었으나 조금도 괴이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니 과연 소문과 같다." 아홉 살에 궁중으로 시집온 남씨는 3년 만에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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