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2022. 4. 12. 16:52나는 王이로다

세종후 왕권을 위협하는 유력 주자로 지목되던 중 1453(단종1) 계유정난으로 안평대군, 김종서를 죽이고 스스로 영의정부사에 올라 전권을 장악한 뒤 스스로 정난공신1등관에 녹훈하였다가 1455년 단종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즉위하였다.

李揉(),진평대군-함평대군-진양대군-수양대군

세조의 묘호로 신종(神宗), 예종(睿宗), 성종(聖宗)을 추천했으나,예종'나라를 중흥한 공'을 들어 세조를 제안하였다

재위 1455.6.11. - 1468.9.7(13)

재세 1417.9.29.(태종17)- 1468.9.8.(51)

부인- 4, -5(41)

-정희왕후 윤씨-21(의경세자(덕종),해양대군(예종),의숙공주

-근빈 박씨-2, 소용 박씨, 숙원 신씨

-광릉(동원이강릉)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왕과의 술자리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과 신하가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밤이 아닌 아침에 술자리가 많았는데, 아침 조회인 상참이 끝나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의 왕 중에서 최고의 애주가를 뽑는다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 바로 세조를 꼽을 수 있다.

최고의 애주가라고 할 만큼 신하들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주사를 부려 죽을 뻔한 사람, 의심받은 사람 그리고 아예 사형당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의미로 세조에 얽힌 다양한 짤막한 술 뒷담화를 정리해보았다.

세조에게 “너”라고 말한 정인지

집현전 학자들과 우리 문학 사상 최초의 한글 시 ’용비어천가’를 지은 정인지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계유정난의 1등 공신으로 책봉된 인물이다.

정인지에 대한 세조의 신뢰도 특별했는데, 문제는 그가 술이 무척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세조와의 술자리에서 네 번이나 실수를 저지르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세조 4년(1458) 세조가 경회루에서 환갑이 넘은 대소신료를 불러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던 때의 일이었다.

이때 정인지는 역사에 남을 말을 남기는데, 바로 세조에게 “너[汝]”라고 한 것. 왕에게 너라고 했으니 중죄 중의 중죄였다. 중신들은 처벌을 간청했으나 의외로 세조가 일축을 한다. 하지만 정인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조 말년에는 세조를 '태상(상왕)'이라고 불렀다가 분노를 사기도 했으며, 신하들도 이번에는 정인지를 벌하자고 간언했다. 하지만 세조는 "늙은 영감이 그랬는데 뭘 그러냐"라며 넘어갔다. 세조보다 21살이나 나이가 많기도 했고, 이미 퇴역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살린 것이다.

역시 집현전 학자이면서 변절의 아이콘인 인물이 있다.

바로 신숙주. 맛이 잘 상하는 녹두나물이 숙주나물이란 되었다는 이름도 신숙주라는 변절자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정도다.

정인지와 같이 훈민정음해례본을 만들었으며, 용비어천가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이런 신숙주가 술자리에서 세조와 팔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첫판은 세조가 이겼으나, 이내 호기가 돌아 두 번째 판에는 세조를 이겨버렸다. 그것도 세조가 아파할 정도로 강하게 이겼다. 이를 지켜본 세조의 책사 한명회는 불안함을 느꼈다.

세조가 신숙주의 충성심을 의심하면 피바람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명회는 하나의 꾀를 낸다. 세조가 신숙주를 의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인데, 그것은 신숙주가 만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에 한명회는 신숙주의 하인에게 집주인의 책과 등불을 모두 없애 놓으라고 했다. 이유는 그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신숙주는 아무리 술에 취해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은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는 신숙주가 정말로 취해서 자신을 이긴 것인지, 반대로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자신을 이긴 것인지 확인하고자 사람을 시켜, 그가 새벽에 일어나는지 보라고 했고, 불이 켜지지 않는 것을 보자, 만취했다고 생각, 이후 의심을 풀었다는 일화다. 이 이야기는 소문쇄록(謏聞瑣錄)이라는 연산군 시절의 지리 및 야사 등을 기록한 문헌에 나와 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도운 무인은 약 30명 정도다.

이중 양정(楊汀·?~1466)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계유정난 이후 2등 공신에 책록, 공조판서, 충주 부판사 등을 거쳐 함길도 도절제사에 오른다. 이에 양정이 함길도에서 돌아오자 그를 위해 위로연을 베푸는데, 양정이 여기서 술에 취해 씻을 수 없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상감께서도 오랫동안 왕위에 계셨으니 이제 편히 여생을 즐기는 것이 어떠냐’며 왕위를 선위(禪位) 하라고 진언하였다” 바로 양위를 건의한 것이었다.

세조는 승지를 불러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승지들은 이에 응하지 못하고, 결국 신숙주가 죽음을 각오하고 양위 사태를 말려서 무마되었으며, 양정은 결국 규탄을 받아 사형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60여 세였다. 실록에서는 그가 북방의 변방에서 근무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세조에게 '너'라고 말하는 정인지보다 양위하라는 양정이 더욱 큰 벌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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