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襄之仁
2022. 5. 8. 03:16ㆍ어째서 古事成語 일까
songxiangzhiren 宋襄之仁
-송나라 양공의 仁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거나 불필요한 동정이나 배려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
君子不困人於阸 不鼓不成列
송양공이 말했다 군자는 다른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곤란하게 만들지 않고 전열을 갖추지 않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사기 송미자세가)
중국 춘추시대, 강대국 초(楚)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송나라 군사가 홍수(泓水)라는 큰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을 때다. 양공은 “강을 건너면서 대오가 흐트러진 적을 쳐야 이길 수 있다”는 재상 목이(目夷)의 재촉에 “적이 곤란한 틈을 노려 공격하는 것은 군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며 대군의 도강을 그냥 지켜본다. 곧이어 강을 건너와 전열을 갖춘 초군과의 전투에서 송은 여지없이 대패하고, 양공도 큰 부상을 입어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이후 사람들은 본인의 처지도 모르면서 명분만 앞세우며 베푸는 인정을 ‘송양지인’ 이라 부르면서 비웃었다.
양공이 매사에 인의를 앞세우는 군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 견해도 많다. 춘추의 패자(覇者)가 되려는 야망을 품은 양공이 앞서 회맹을 맺는 자리에 늦게 도착했다고 소국의 군주를 가두고, 제물로 삼아 죽이는 등의 악행을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와의 전쟁 일화를 놓고서는 세평이 엇갈린다. ‘어리석다’는 일반적 평가와 달리 역사가 사마천은 “인의가 무너지는 작금의 현실에서 양공의 인은 칭송받을 만하다”고 했고, 성리학의 대가 주자 등은 양공의 인을 높이 사면서 춘추시대 다섯 패자, 즉 춘추오패(春秋五覇)의 범주에 양공을 포함하기도 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