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5. 22:47ㆍ어째서 古事成語 일까
daoxingnishi 倒行逆施
- 거꾸로 가고 거꾸로 행하다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행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사마천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에 실린 고사성어로, 춘추시대의 오자서가 그의 친구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고 말한 데에서 유래했다.
초(楚)나라의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가 초평왕에게 살해되자 오(吳)나라로 도망쳐 오왕 합려의 신하가 되어 초나라를 공격했다.
승리한 오자서는 원수를 갚고자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번 내리쳤다.
이 소식을 들은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편지를 보내 “과한 행동”이라고 질책하자
오자서는 편지를 가져온 이에게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어서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고 말했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신포서는 북쪽 진(秦)나라에 달려가 애공(哀公)을 붙들고 눈물로 구원군을 요청했고, 그 애소에 감복한 애공은 마침내 출병을 허락했다.
오자서는 투지를 불태우며 이번에는 창끝을 진나라에 겨누었다.
그런데 이때 오나라 국내에 반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오자서는 진나라와의 결전과 소왕 추적을 포기하고 회군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오나라에 돌아오자마자 반란군을 격파해 급한 불은 껐지만, 그를 신임한 합려가 죽고 공자인 부차(夫差)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의 입지는 눈에 띄게 약화되어 갔다.
부차는 타국 출신으로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오자서를 평소부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왕권을 쥐게 되자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오자서를 시기하던 백비(佰嚭)가 갖은 험담으로 중상모략하자, 부차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오자서로 하여금 자결하도록 명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