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10. 11:31ㆍ어째서 古事成語 일까
koumifujian 口蜜腹劍
-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있다
겉으로는 꿀맛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것을
《十八史略 》에 있는 고사의 이야기이다.
唐 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則天武后이래의 정치의 亂脈을 바로잡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한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楊貴妃를 총애하여 주색에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출세하여 재상이 된 사람이다. 李林甫는 황제의 비위만을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한번은 비리를 彈劾하는 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있으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이런 식으로 해서 신하들의 입을 봉해 버렸다. 설령 직언을 생각하고 있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질투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척하고 억누르는, 성격이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고 말했다[李林甫 妬賢嫉能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劒.”
그가 야밤 중에 그의 서제 偃月堂 들어앉아 장고를 했다하면 그 다음날은 예외없이 누군가가 誅殺되었으며 자주 獄事를 일으켰으므로 황태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재상 지위에 있기를 19년 동안에 천하의 난리를 길러냈으나 현종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安祿山도 李林甫의 술수를 두려워했으므로 감히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楊國忠이 재상이 되었다. 양국충도 재상이 되자 마자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 현종에게 고하자 이제서야 깨닫고 크게 화가 난 현종은 명령을 내려 그의 생전의 관직을 모두 박탈하고 패가망신과 함께 剖棺斬屍의 극형에 처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李林甫가 죽은지 3년째 되던 해였다.